얼마 전, 35번째 생일을 맞았다. 부족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친구, 지인들이 정말 감사하게도 선물을 보내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보내준 선물의 99%가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서라는 점이다. 언제나 선물 고르기는 쉽지 않은 과제인데, 가격대별로 편리하게 고르고, 또 편리하게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선물 플랫폼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선물'이 가지는 진정한 함의는 그 물건의 종류나 질을 떠나 감사를 얼마나 쉽고 편하게 나타나는데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게다가 원한다면 받은 사람이 따로 검색을 통해 보내준 선물의 가격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받은 만큼 되돌려줘야 하는 우리의 정서상, 다음 번 내가 베풀 때의 얼마 정도 써야 할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부상조의 투명한 시스템이라 ..
후지필름의 몇 안 남은 고급 라인의 필름 중 마지막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pro 400H가 단종절차를 밟는다는 공식 발표가 오늘 있었다. 135 필름은 1월 14일(하필 내 생일이다)에 곧장 단종되며, 120 필름은 2021년 말까지 생산 후 단종이 될 예정인 듯 하다. 발표 불과 몇 시간 안에 BH에서는 구매가 불가능하고 이베이에서도 거의 2배에 가까운 금액으로 가격이 뛰고 있다. 가격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항상 선망하던 필름이 사라진다는게 너무나 아쉽고 슬프다. 필름의 색에는 시대의 색이 묻어 있다. pro 400H의 물빠진, 차분한 색을 보면 항상 일본이 생각나는데, 분위기를 담는 그릇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지금 가지고 있는게 135, 120 포함해서 약 15롤 정도 되는데, 급..
발해 사학사 연구 송기호 지음 “발해에 겹쳐진 역사와 지리관계의 이해” 발해에 대해서 어릴 적 처음 발해에 대해서 배울 때 굉장히 신기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한국사에 등장하는 국가 중에 가장 면적도 크고, 통일신라시대와 동시대의 국가라 고대 국가로 거슬러 가는 것도 아닌데,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아 베일에 싸인 느낌이었다. 무협소설에 나올 법한 신비로운 국가의 이미지랄까. 수업에서도 신라와의 관계에 집중했을 뿐, 깊게 배우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발해는 거의 내 기억 속에 잊힌 나라였다.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송기호 교수의 발해 3부작 중 마지막인 는 그간 저자가 작성한 연구 논문들을 집대성한 책이다. 그는 발해를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 통일신라와 함께 남북국을 이룬 국가로..
현재는 펜탁스 67II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전에 총 2대의 펜탁스 67을 사용했다. 모두 미러업과 TTL이 내장된 파인더로(통상 후기형, late version으로 불리는) 2년 조금 넘게 사용했던 것 같다. 중고거래로 펜탁스 67 본체에 105mm, 55mm, 200mm로 구성된 세트를 110만원에 구입했었다. 처음 카메라를 받아보고 그 크기에 깜놀했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덧 사이즈가 아무렇지 않는 내 자신을 보면 세월이 흘렀구나 느낌... 첫번째 세트는 아쉽게도 캐논 오막포 구입 자금을 대기 위해 처분했었다. 원래 필카 국룰이 한번 구입하면 절대 처분하면 안 되는 것인데... 역시 그때 판 것을 후회하며 결국 콘탁스 G2를 팔고 다시 구입했다. 이유는 결국 중판이 필요해서... 건축 사진을 찍는데 ..
공간, 장소, 젠더 도린 매시 지음, 정현주 옮김 “공간, 장소에 대한 관계적 이해" 공간에 내재된 다양한 관계들 공간은 기본적으로 불평등하다. 토지는 한정적이고 그 생산성과 위치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차등적인 공간구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 관계로 공간이 재편되는 경우가 많고, 생산수단을 지닌 기업이나 자본가, 혹은 전문가들이 특정 공간을 점유하면서 그 속에 내재된 경제적 우위가 공간적인 우위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다양하고 다층적인 맥락의 권력관계가 양산되고 공간의 지배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영국의 저명한 지리학자 도린 매시는 책을 통해 그 공간과 장소에 내재한 차이에 대한 번뜩이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가 가진 사고의 핵심 단어는 ‘관계’인데, 사회적 상호 관계나 경제..
옐로우 퍼시픽 – 다중적 근대성과 동아시아 조영한, 조영헌 지음 "근대성에 대한 이해와 확장의 출발점" 글로벌과 로컬의 변주 속에서 지난하고 긴 코로나 시대에서 한국 바깥에 닿는 방법 중 하나는 미디어였다. 힘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BTS가 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을 통해 대리 만족을 하며 ‘아미’가 된 사람들이 늘어났고, 파울로 코엘료가 트위터를 통해 드라마 를 극찬한 것을 계기로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가 다시 인기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다방면에 걸쳐서 해외에 퍼지고 있는 K-문화의 위상 덕택에 한국 문화가 외국에서 소비될 때 느낄 수 있는 ‘국뽕’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의 문화가 변방이라는 위치성에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봉준호 감독의 로컬 발언을 필두..
위험한 위험 - 위험으로의 초대 석승훈 지음 "위험의 전가와 통합에 관한 다층적 과정" 위험에 대해 안다는 것 사회의 발전은 위험의 관리와 궤를 같이 한다.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도 결국 개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생존의 문제를 어디까지 사회의 위험으로 관리할 것인가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곧 위험의 존재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됨을 의미한다. 어떤 위험이 있는지 먼저 알아야 적절한 계획과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배달 노동자와 같이 특수고용노동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고용보험을 확대하자는 목소리도 결국 고용보험에 배제된 사람들이 늘어난 것을 우리 사회가 점차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생활에서 위험이라는 것을 인지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위험은 그저 예..
나의 첫 필름카메라는 대학교 1학년 때 산 펜탁스의 였다. 사진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면서 17만원을 주고 샀었는데, 몇년 전까지 고장 없이 잘 사용했었다. 그걸로 광화문 '광화랑'에서 전시도 하고, 여행도 여럿 다녀오고, 내 웨딩 사진도 찍었다. 무엇이든 첫 경험이 중요한 것처럼, 펜탁스라는 브랜드는 나에게 무척 의미 있게 각인되었다. 가볍고 편리한 조작감에 청량한 짙은 색감에 익숙해져 일종의 내가 형성하는 색감에 중요한 기준점 중 하나가 되었달까. 2010년도 중반부터 콘탁스도 주력으로 사용하긴 했지만 여전히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slr은 나에게 있어 펜탁스였다. 나이가 차고 티끌만한 재력이 좀 생기면서, 자연히 펜탁스의 slr 시대의 (상징적인) 최고봉인 에 눈을 들이게 되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
펜탁스에서 발매된 필름 p&s 카메라는 타 브랜드에 비하면 인지도가 좀 떨어지긴 하지만 알게 모르게 다양하게 발매되었고, 몇 가지 명기로 꼽는 것들이 있다. 언뜻 떠올려보면 1982년에 처음 공개된 PC35AF라던지, 방수에 줌이 가능한 1991년에 공개된 Zoom 90WR, 에스피오 시리즈들 정도로 생각난다. 그 중, 에스피오 시리즈에서 단렌즈로 발매된 모델이 바로 에스피오 미니(espio mini)이다. 무려 펜탁스 설립 70주년을 기념해서 나온 기종. 펜탁스 유저로서 펜탁스 p&s가 궁금하기도 했고, 워낙 좋은 평가를 받는 카메라라 이베이에서 구입했다. 캐내디언에게 낙찰받아서 미국 거쳐서 한국으로 도착. 꽤 가격대가 있는 카메라인데, 올림푸스 뮤2와 스펙에서도, 크기에서도 유사해서인지 200~250..
과학의 씨앗 – 나는 어떻게 GMO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나 마크 라이너스 저 – 조형택 옮김 반 GMO에 대한 반대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마트에 가면 원산지 논쟁은 유독 두부 코너에서 잦은 것 같다. 오늘도 그랬다. “국내산인거 확인했니?” 어느 아주머니가 아들로 보이는 아이에게 조용히 나무라듯 말했다. “이게 더 싼데...”라고 중얼거리는 아이에게 두부는 꼭 국내산을 먹어야 한다며, 1+1으로 포장된 두부를 내려놓고 낱개로 된 두부로 다시 담았다. 그녀가 집어든 두부에는 ‘100% 국내산’ 라는 문구가 단짝 친구처럼 상품명 바로 옆에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사람도, 농산물도 자유롭게 오가는 시대에 수입산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음식 재료가 쉽게 있을까 싶지만, 두부에 대한 시선이 유독 까..
인간을 다시 묻는다 -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편 권재일 외 "인간의 조건에 대한 다층적 가능성 " 어떻게 인간이 되는가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의 근황 토크에서 그는 “맨날 기계처럼 일만 해. 감정이 고갈되는 느낌이야.”라며 신세 한탄을 했다. 그러면서 “언제쯤 맘 편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수 있지?” 라고 되물었다. 선배에게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자유가 곧 인간성의 획득 과정이었다. 코로나 시대로 접어 들면서 근무환경이 유연해진 것을 그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일이라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어떤 조건을 필요로 할까. 선배에게는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이듯이 생물학적 신체는 인간이 될..
오차 분석 입문 - 자연과학적 측정에서 불확실성의 탐구 존 테일러 지음 / 김재관 옮김 차이를 해석하는 과정 오차에 대한 두려움 학부 때 건축학을 전공하면서 차이는 학생들에게 언제나 중요한 문제였다. 도면을 그리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차 - 예를 들어 2,400mm의 복도 폭을 그리는 과정에서 모종의 이유로 3mm가 더해져 2,403mm로 그려진다든지 - 는 밤을 새게 만드는 큰 요인 중 하나였다. 가로선과 세로선이 만나고, 내부와 외부 공간이 형성되면서 애매한 수치로 그려지는 경우가 반드시 발생한다. 사람이 그리는 일이니 실수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도면의 숫자들도 지저분해질 뿐더러, 실제로 시공으로 이어질 경우 예기치 못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에 항상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
북한, 조선으로 다시 읽다 김병로 지음 21세기의 북한을 이해하다 조선은 우리 옆에 아직 있다 작년, KBS에서 3.1운동 100주년의 특집으로 한편의 다큐를 기획했다. 주제는 재일동포와 일본 내 조선학교. 이 다큐에서 나는 학생들의 입에서 익숙하게 흘러나오는 ‘조선’이라는 단어를 듣고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제 4세대에 가깝게 흘러 온 만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조차 희미해질 줄 알았는데, 한국도 아닌, 조선이라니. 학생들은 북한에 교류 및 수학여행을 가서 북한의 또래 학생들과 재회하며 눈물을 흘렸고, 여전히 ‘조선’은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강력한 매개 장치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COVID-19 상황이 발생하기 직전인 올해 초, 가족과 함께 일본 가고시마 ..
포스트모던 시대의 정신 - 인본주의적 가치의 붕괴와 후기 근대의 디스토피아 신정현 지음 삶의 가치는 어떻게 획득되는가 21세기의 사파리 0.8명. 얼마 전 예측된 올해의 우리나라 출산율 숫자다. 물론 무척 충격적이지만, 그 누구도 이제 쉽게 놀라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100년 후에는 한국인이 사라질 수 있다는 침울한 전망을 내 놓아도 그 수치는 미래의 누군가의 몫일뿐이다. 이미 저출산은 10년이 넘게 정책의 단골 소재이자, 항상 주연으로 정치판에 등장했음에도 큰 효과가 없는 것을 보면, 애초에 그 무대에 배우를 잘못 기용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무슨 홍삼도 아닌데 3,5,7포로 이어지며 삶의 기본적인 조건을 하나, 둘씩 포기 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쉽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라”, “그 속에 탄..
한국의 노숙인 - 그 삶을 이해한다는 것 구인회, 정근식, 신명호 편저 노숙으로 가는 과정들 무엇이 노숙으로 이끄는가 얼마 전, 본가에 내려가기 위해 서울역을 갔다가 광장에서 한 여성을 보았다. 대략 오전 9시 정도 되었을까, 오른쪽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바치고 무언가를 요청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시간에 쫓겨 다시 떠나갈 때까지 그녀는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불편한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왜인지 돈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에(구걸의 필수 물건인 돈바구니를 구할 시간도 없었던 것일까)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난 누군가에게 그 마음의 짐을 떠넘기듯 서울역 안으로 발걸음을 서둘러 재촉해 버리고 말았다. 서늘한 아..
얼마 전 충무로 월포에서 현상과 스캔을 처음 맡겼는데, 생각보다 해상도가 낮아서 당황했었다. 현상 속도와 담당자님의 큰 친절은 무척 고마웠지만, 가격에 비해 스캔 해상도가 떨어져서 큰 고민이 되었다. 빨리 작업해서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주말 동안 고민하다가, 평소 위시리스트 중에 하나인 엡손 스캐너를 결국 구매했다. 도착한 V600. 글로벌 출시일 자체는 거진 6~7년이 다 되어서 사골 스캐너라고 볼 수 있긴 하지만, 국내 정식 발매는 지난 5월에 V850과 나와서 신제품 아닌 신제품이다. 맘 같아서는 그래도 V850을 사고 싶지만, 100만원이나 넘는 돈을 투자할 여력도 없고 가성비도 그렇게 높지 않다고 느낀다. V600과 V850는 스캔 렌즈 차이와 함께 (V850은 무슨 듀얼 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