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치는 어떻게 획득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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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모던 시대의 정신 - 인본주의적 가치의 붕괴와 후기 근대의 디스토피아

    신정현 지음

     

     

     

    삶의 가치는 어떻게 획득되는가

     

     

    우리의 삶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21세기의 사파리

    0.8명.

    얼마 전 예측된 올해의 우리나라 출산율 숫자다. 물론 무척 충격적이지만, 그 누구도 이제 쉽게 놀라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100년 후에는 한국인이 사라질 수 있다는 침울한 전망을 내 놓아도 그 수치는 미래의 누군가의 몫일뿐이다. 이미 저출산은 10년이 넘게 정책의 단골 소재이자, 항상  주연으로 정치판에 등장했음에도 큰 효과가 없는 것을 보면, 애초에 그 무대에 배우를 잘못 기용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무슨 홍삼도 아닌데 3,5,7포로 이어지며 삶의 기본적인 조건을 하나, 둘씩 포기 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쉽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라”, “그 속에 탄생의 아름다움과 삶의 즐거움이 있다” 고 말할 순 없는 현실이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당사자인 청년들이 미래에 대해 마냥 무책임한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국가에 대한 부채의식과 부모에 대한 죄의식을 한껏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각자도생하며 살아간다. 죄송하다고 해서 당장 생존을 걸 수는 없지 않나. 

     

    세상은 진보하고 발전해 왔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약육강식의 세계다. 이러한 21세기의 '사파리' 같은 공간 속에서, 삶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사치일 수 있다. 종교니, 철학이니, 혹은 인본주의 말살의 시대라는 비판은 때로는 '그럼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라는 내면의 외침을 만든다. 내가 기댈 곳은 결국 자본주의 속에서, 남들 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가는 길 뿐 아니던가. 아니, 그렇게라도 믿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기대라도 없으면 내가 쏟아 붓는 노력은 의미가 없어지니까. 룰은 그러한 공통된 가치 속에서 만들어지고 적용되어야 하기에, 최근의 ‘공정성’ 논의는 삶의 직접적인 가치와 맞닿아 있는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각박한 삶 속에서, 영문학 명예교수인 저자가 쓴 이 책을 마음먹고 집어 들었을 때 괜히 울컥하는 마음이 앞설까 겁이 났다. 마음이 초조하면 잘 쓰인 텍스트도 괜한 잔소리로만 들리기 마련이기에, 저자가 오랫동안 심사숙고하며 쓴 좋은 저서가 나에게는 훈계로만 느껴질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것은 기우였다. 오히려 책을 통해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하면 부끄러운 고백일까. 나보다 한참이나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발자취는 놀랍게도 지금도 유효해서, 나와 주변의 삶을 돌아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저자는 이 시대의 정신을 이루고 있는 근간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포스트 모던의 시대를 상정하고 글을 풀어 나간다. 포스트모더니티는 저자도 서론에서 밝힌 것처럼, 그 실체가 모호하긴 하지만 (정말로 완벽하게 도래했던 순간이 있었나?) 그럼에도 근대성이 만들어 낸 폐해를 다각도로 그려보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삶의 가치를 찾는 것은 답이 없거나 모호한, 그러한 질문들의 연속이기에 모더니즘의 대비로써 '포스트-' 를 상상하는 것은 다양한 질문을 상상해 보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책은 탈근대의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한 징조를 조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포스트 모던 속의 디스토피아, 모더니즘 문학의 역설들을 살펴보고 끝으로 이 시대의 허무에 대해 논한다. 어떻게 근대의 이성과 합리성, 과학적 사고방식들이 개인의 자아를 안개 속으로 흩어지게 만드는지, 여러 사상가 및 소설가 등의 목소리를 빌려 설명한다. 특히 니체나 헤겔, 칸트, 푸코와 같은 독일의 근현대 철학가와 엘리엇, 포크너 등의 영미권 소설가들이 주축이 된다. 평소 많은 작품을 접하지는 못했던 나이지만,  항상 궁금했던 이름들이기에, 그들의 생각에 대해 알게 되는 과정 또한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각각의 경험과 말이 지금에는 완전히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없더라도, 현재와 과거를 비교하며 그들이 느낀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적어도 관점의 저변이 넓어지는 경험을 분명 하게 된다. 

     

     

    (포스트) 모더니티의 화살표

    소설가 사무엘 베케트는 극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에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서구 이성중심주의 형이상학의 당위성을 해체하면, 그 실존은 얼마나 초라해질지 반문한다.(p.59) 그의 말처럼, 모더니즘은 이성중심주의, 합리성, 소비주의, 다윈주의 등 인간의 사고, 다시 말해 인간 스스로 자율성으로서 구축되는 삶의 양식 전반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근대화의 이행 과정은 신과 관습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그래서 오히려 스스로의 자율성을 획득하고 의지할 수 있는 일견 '인간' 혁명과 같은 시대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극 중,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의 모습  

     

    그러나 저자는 인간의 이성은 17-18세기 서구의 계몽주의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절대 진리를 인식해 낼 수 있는 완전한 인지능력도 아니었고, 각종의 편견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지고의 인지능력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서구 세계가 물질혁명으로서의 산업혁명과 정신혁명으로서의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겪은 이후, 인간의 이성은 오히려 보편적 이성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p.198-199) 그렇다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그 대응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일까?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그의 책 <삶에의 용기>(The Courage to Be)에서 그의 시대를 ‘불안의 시대’(the age of anxiety)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이 시대의 불안이 ’삶의 의미 없음에 대한 불안’이라고 갈파했다. 그의 시대의 유럽인들은 삶에 의미를 주던 신에 대한 믿음이나 신을 향한 목적도 없이, 삶의 문제들을 오직 자신의 선택만으로 해결해야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은 완전한 자유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는 어떤 신이나 어떤 본질(essences)에 대한 참조가 없는 선택의 자유로서,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어떤 책임도 지지않는 지극한 불안과 고뇌를 수반한 자유였다. (p.223-224)

     

    미국의 시인 월러스 스티븐스는 현상학자 후설의 철학적 방법을 차용하여 기존의 믿음이나 전제, 즉 괄호(bracket) 안에 묶여 있는 관념들을 해체해서 생명력을 복원하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역할과 그 논의도 이미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이미 고정관념으로써 박제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포스트'라는 단어 자체가 괄호 안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 우리가 치열하게 부딪히는 삶을 단순히 모더니즘이 남긴 폐기물로 보지 않고,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리폼의 재료로 이해할 수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20세기 초 사상가들이 경고한 것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이 고달픈 현재의 삶을 위로받고 기대기 위해서는 현재에 맞게 다시 사고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제 과거처럼 신이나 전통, 혹은 어떤 절대적인 것에 의지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한 삶은 또 다른 의미 없는 향수일 뿐이다. 포스트모더니티의 화살표가 향하는 과녁은 어쩌면 여전히 불완전하고 불안정하지만, 조금은 더 성숙한 정도의 삶의 과정에 있지는 않을까. 이성적 사고의 한계를 인식하되, 이를 보완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획득하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것. 그러한 노력 자체가 의미 있고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근대성의 논쟁들

    그렇기에 근대성은 모든 인본주의와 삶의 가치를 무너뜨린 장본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저자는 하버마스의 논문을 인용하며 종교와 철학의 통합적 권위를 받쳐 주던 이성이 근대가 진전되면서 ‘앎’(knowledge)과 ‘정의’(justice)와 ‘심미적 취향’(taste)을 추구하는 능력으로 분화되었고, 그것들을 대학이라는 환경 속에서 ‘과학’, ‘범과 윤리’, ‘미학’의 영역으로 제도화되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그 결과,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 그리고 실재하는 삶과는 사뭇 동떨어진, 오직 추상적 이론으로만 설명이 가능한 여러 개의 자율적 세계를 구축하게 되었음을 얘기한다. (p.367)

     

    그러나 다시, 하머바스에게 ‘이성의 분화’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하버마스는 분화된 이성이 ‘삶과 동떨어진’ 아카데미아의 세계 속으로 침잠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개발된 추상의 이론들이 삶으로의 ‘실용적 접목’(pragmatic appropriation)을 통해 실재하는 삶의 경험역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분화된 이성은 그 자체로서 큰 자유와 진보를 얻는 촉진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p.368) 나도 그의 생각에 깊이 동의힌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성중심의 사고를 완전히 부정하기 보다는 그것의 폐해를 인지하고 교차적으로 현명하게 활용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그 속에 기존의 단절된 이성의 틀이 와해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마셜 버먼에게도 이성적 사고에 의한 자유의 확장은 개개인의 ‘주관성이 해방’된 것과 그것으로 얻게 된 ‘새로운 것’에의 무한도전의 정신이었다. 관습과 전통이라는 기성의 권위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게 되었다. 무한도전의 정신은 진취적 도전정신을 확대하여 모든 권위들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것…(p.369)

     

    이처럼 근대성은 절대악도 아니고, 극복하지 못할 대상도 아니다. 비록 우리의 실존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여겨진다 하더라도, 일말의 자유 의지를 통해 싸워갈 수 있다. 지나치게 무거운 것들을 좀 덜어 내는 게 어떤가. 다 덜어내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닐까. 각자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꼭 가슴 속에 깊이 담아두고서. 

     

     

    새로운 근대성모래와 모래 사이

    나는 삶을 구성하는 가치 체계가 모래와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손으로 집으면 금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지만, 몇 개의 모래알 정도는 손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약간의 물을 이용하면 그 모래를 조금씩 뭉쳐 보다 단단한 성을 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멋지게 쌓아 올린 성도 큰 파도 앞에서는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모래 자체가 결코 사라지는 건 아니다. 기존의 모래성이 무너진 이후에도 우리는 다시 모래를 움켜쥐고 다른 성을 쌓는다. 무너지면 쌓고, 무너지면 쌓고… 그렇게 반복되는 과정 자체가 바로 삶이라고 느낀다.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자 했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생전 모습

     

    19세기 말,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Remembrance of Things Past)’에서 종국에는 중년이 된 주인공이 쓰려고 한 삶이 바로 그가 20여년동안 무의식을 탐색하며 이미 써 온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8권에 다다르는 그의 책은 그 자체로 한 사람의 삶을 이루고 있다. 이 소설을 통해 프루스트는 자신의 상상력에 의해 해방된 소설 의 무의식 공간이 합리와 이성의 틀에 묶인 의식의 공간보다 넓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p.229) 그러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 경계 짓기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이성의 세계도, 상상의 세계도 모두 공존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결국 대부분의 삶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해묵은 대립 논쟁에 매몰되기보다 그 상호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미 그 격변의 시대를 경험하고 또 사유했던 인생 선배들이 남긴 것들은 존재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책에 수록된 방대한 레퍼런스들은 꼭 되집어 보아야 할 과거의 지점들이고, 이는 마치 정확한 좌표가 찍힌 두툼한 맛집 지도와도 같다. 세계 속 지적 미식 여행을 떠난다는 기분으로, 누구나 꼭 한 번쯤은 펼쳐 보면 좋겠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58547456?scode=032&OzSrank=1

     

    포스트모던 시대의 정신

    포스트모던 시대를 움직이는 정신은 무엇인가이 책은 포스트모던의 시대와 그 시대를 움직여 온 정신을 바라보는 다섯 가지 관점을 설정하고 포스트모던 시대와 포스트모던 시대의 정신을 조��

    www.yes24.com

     

     

    사진 출처

    1. 본인

    2. 극, 고도를 기다리며 (https://lovelybodyandsoulandspinach.tistory.com/104)

    3.마르셀 프루스트의 모습 (http://blog.daum.net/enature/1585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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