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그 분기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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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발흥 - 비교경제사 연구

    양동휴 지음

     

     

     

     

    유럽은 어떻게 아시아를 앞지르게 되었을까

     

    유럽과 아시아의 무역지 중심지 중 하나였던 베네치아 

     

    유럽은 원래부터 나가지 않았다

    인류사가 쓰이기 시작한 비교적 긴 시간 동안, 현재 유럽으로 통칭되는 일대가 ‘내가 제일 잘 나가’를 외치기 시작한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다시 더듬어 보면 소위 인류 4대 문명이라는 지역도 유럽과는 비교적 떨어져 있으며, 세계인의 삶에 획기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는 종이, 화약과 같은 상품들도 중국에서 먼저 발명되었다. 19세기 중반, 영국이 중국에 1,2차 아편전쟁을 일으킨 배경에도 무역상품의 불균형, 즉 영국이 중국에 팔 만한 거라고는 아편이 큰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도리어 중국이나 인도 등에서 생산되었던 상품들은 비교적 최근의 시기까지도 유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경제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인도와 중동, 아시아권은 16~17세기부터 서로 다른 몇 가지 선택과 차이들로 인해 그 격차가 점차 커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른바 대분기(Great Divergence)의 시점이 발생한 것이다. 

     

    사실 나도 이과 트리를 탄 사람으로서, 전공 분야를 제외하면 역사에 대해 깊이 있는 내용을 알지는 못한다. 경제사 쪽은 특히 더 그러한데,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이전의 시기는 거의 중세 암흑기 마냥 비어 있다. 부족한 부분을 업데이트하고자 이 책을 골랐는데, 그 방대한 내용에 머리속 OS가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다양한 커다란 카테고리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 양동휴 교수는 그 분기가 일어난 전/후를 다양한 측면과 조건 속에서 면밀히 검토한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법한 과학혁명에 대한 부분에서부터 제도와 재산권, 국가시스템이 가지는 차이, 문화와 종교, 그리고 중요한 화폐, 금융 시스템까지 그 대분기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조건들을 거의 빠짐없이 수집하여 보여 준다. 기존 선행연구의 관점과 또 그것을 비판하는 관점 뿐 아니라 저자의 개인적인 의견까지, 그 수집품들이 하나같이 다양해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씩 꼼꼼히 살피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어려운 책이란 소리는 아니다. 각각의 포인트에 대해서 명확히 정리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그 흐름과 맥락을 파악하는데 무척 유용하다. 이 책을 기반으로 각 요인들에 대한 공부를 더 해볼 수 있는 키워드들이 제공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럽의 발전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이자 카탈로그 같은 책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러한 내용들을 다 파악하고 정리 했을지, 저자의 방대한 지식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유럽은 처음부터 잘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산업혁명, 과학혁명, 계몽주의 사상 등을 재료로 한 뻥튀기처럼 갑자기 ‘뻥’하고 발전한 것도 아니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저자의 말처럼 그 순간을 유럽과 아시아를 서로 동일한 선상에서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몇가지 요인들로 인해 유럽이 발전하게 되었다는 설명은 결과론적 인과의 오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 ‘비교경제사’라는 부제가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마치 그 시절을 살았던 것처럼 그 때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책을 통해 떠올려 본다.   

     

     

    명나라 젱호(정화)의 기함(네번째)과 콜롬버스의 산타마리아(세번째)의 스케일 비교. 어떻게 이렇게 큰 차이가 사라질 수 있었을까.  

     

     

    중심과 주변의 대등한 관계

    책에서는 평소 우리가 갖고 있던 지식이나 선입견을 뒤집는 데이터를 다수 제시하며 이야기를 이끈다. 가령 1인당 농산물 생산량을 비교해보면 18세기 초까지 중국이 서유럽을 압도했다. (p.22) 물론 서로 다른 곡물을 재배했기에 단순히 비교하는 것의 한계는 있으나 아시아권에서 흔히 생각하는 가난한 농민들의 삶, 빈곤의 수준이 세계적인 국가 간 비교에서 보았을 때 반드시 낮았다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1인당 실질임금도 마찬가지이며, 특히 인구수에 관한 부분도 그렇다. 멜서스적 경제 성장도 단순히 생산량의 한계에 기인하기 보다는 조혼과 여아를 유기하는 악습에 기인하며 인구 수가 조절되었음이 밝혀졌고(p.58) 유럽에 비해서 노동집약적 농업 형태가 아시아에서만 특별히 높았던 것도 아니었다. 10-13세기의 송나라 시대의 기술력 또한 출중해서 경제혁명의 시대로 이해될 정도이다. (p.73) 

     

     

    정치적 환경이 좋았으면 송나라의 영광이 지속 또는 복귀했을 것이다. 농업기술도 축적되었고 제염, 목재, 제분, 해운기술도 연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송대 이후의 문제는 ‘지대 추구’라는 성장 저해 요인이었다. 성장윤리가 없었고 농업중시에 묻혀 상공업을 천시했으며, 시장을 제한하는 전통사회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p.74)

     

    송나라의 경제적 ‘기적’은 이후 왜 다시 오지 않았을까.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유교적 가치관은 군인과 상인 모두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즉 우주를 바라보는 유교의 세계관은 낙천적 태도, 가족주의, 관료적 권위주의 등이었다…릴의 설명방식에 따르면 중국 문명에는 사회화 과정에서 원죄 개념이 통용되지 않는다. 개인 내면의 죄의식보다 수치심을 자극하는 문화적 요소가 더 컸고, 도덕적 설득이 법적 강제보다 선호되었다. (p.201-202)

     

     

    즉, 출발 조건들은 오히려 중국, 아시아가 앞선 측면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근대적 경제 성장(Modern Economic Growth)로 이행할 수 없었던 이유는 성장을 유도하는 기폭제가 중국 및 아시아에는 약했다는 것인데, 이를 보여주는 것이 중심-주변 관계의 빠른 전환이 없었다는 점에 있다. 가령 현실의 부족함을 발판삼아 새로운 성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가 및 경제의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한데, 중국은 우위로 가지고 있는 것을 쥐어 짜내고 착취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한계 속에 갇혀 버렸다. 이는 유럽이 17세기 이후 국가와 시장이 서로 협력하며 발전한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지나친 중앙집권 형태의 제국주의적 면모를 유지하고 통치 안정성을 획득하기 위해 낮은 조세율을 취한 것이 오히려 근대적 사회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농업 중심의 지대를 추구하는 시장으로 구성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중앙권력의 존속을 위해 낮은 조세, 자치 행정으로 이어지면서 국가 발전은 더디게 되었다. 유교에 기반한 정치이념과 함께 사회화 속에서 서양과 다른 내적 통제 장치, 즉 죄를 인식하기 보다 수치심으로 발현되는 과정을 통해 법보다 도덕적 질서가 우세한 사회 질서가 형성된 것도 근대적 계약 관계로 이행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유럽 또한 왕권과 지역 영주들의 중심-주변 간 권력 관계는 존재했지만 상인들이 등장하면서 이는 점차 약화되었고 상인과 왕권이 서로의 이익을 획득하고 추구하기 위한 전략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도시의 발달은 이의 단적인 증거이고 식민지의 개발은 그 전략적 관계의 결과물이다. 그 과정에서 네덜란드, 영국의 동인도 회사 등이 설립되며 주식, 투자, 계약 등의 개념이 태동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높은 세율을 바탕으로 탄탄한 재정을 갖춘 국가의 탄생은 대외적 안보, 대내적 정치 안정, 재산권 보장, 해외사업 보호와 같은 국가가 공공재를 공급(p.162)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중국에서 관개수로와 같은 대부분의 기반시설의 설치는 지방자치에서 자체적으로 공급하게 한 것과 크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과학-계몽-산업혁명의 테크트리

    같은 이야기를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해석이 다르듯이, 유럽과 중국은 특정 현상이나 를 이루는 요소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랐다. 자연 현상을 이해하는 과학적 사고가 그러했다. 특정한 기술의 발명은 단순히 발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 사고로 이어져야 또 다른 발명으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된다. 즉, 발명한 기술(λ)에서 인식론적 지식(Ω)이 추출되어 또 다른 기술(λ)로 이어지는 순환구조가 필수적이다. 이는 제도와 문화의 뒷받침되어야 하고, 이러한 순환이 태동했던 유렵, 특히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발현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p.130)

     

     

    니덤은 중국에는 ‘입법자로서의 신’ 개념이 없으며 이것은 서양적 개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과학이 발달할 수 있는 내적 요소, 즉 ‘합리적 우주를 합리적 인간이 이해’할 수 있다는 사고가 나온다. 반면 중국의 신유학은 하늘이 명하는 바에 따라 사람과 자연이 지배되는 것으로 보았다. 서양이 엄격한 논증과 증명의 관념을 발전시켰다면 중국은 음양오행설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p.135)

     

     

    니덤의 언급처럼, 인식론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연현상이 보편적 법칙 하에 이루어진다는 전제가 필요한데, 중국은 그러한 사고로 이어지지 못했다. 실험과 관찰을 통해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사고는 유독 유럽권에서만 발달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종교의 영향이 컸다. 익히 알 듯이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고 후속 학자들이 이를 꾸준히 증명하는 과정은 천동설을 밑바탕에 둔 기독교의 저항을 전복하는 과정이었고 신과 개인이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기독교의 개인주의도 일조를 하였다. (p.210) 

     

    이러한 바탕 속에서 기존의 전통을 의문시하는 계몽주의가 태동했고, 베이컨, 볼테르, 몽테스키외로 이어지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가교가 되어 사회과학이 태동하고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이나 인도의 천문학자들은 우주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고를 하였기에(p.129), 현상을 이해하는데 능할 순 있어도 일반적인 법칙을 찾는데 한계가 있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의 연구도 있고 저자는 책을 통해 다양한 의견들을 비교하니 더 알고 싶다면 책을 사서 읽어 보자.  

     

     

     

    중심-주변 관계의 재전환

    서양의 발흥은 동양의 쇠락 다음에 나타났다는(p.185) 언급처럼, 책을 통해 세계사에서 주변부에 머물렀던 유럽권이 어떻게 관계를 역전시킬 수 있었는지 그 서사를 읽을 수 있다. 유럽이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한 과정은 어느 순간 방직기계가 발명 되어 면직물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게 되었다는 식의 단순 신화가 아니라 그것이 발현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있었다. 한번 분기하기 시작한 갈림길은 그 각도가 너무 커서, 초기에 최부국과 최빈국의 1인당 소득 차이가 2.5배에 지나지 않았지만 2020년에 도달한 지금은 1200배가 훌쩍 넘기게 되었다. 이 책을 보는 의의는 이 아득한 간극을 이해하는 데 있다고 느낀다. 우주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빅뱅을 탐구해야 하는 것처럼, 작금의 국가 간 불평등을 이해하는데 그  경제사 ‘빅뱅’의 순간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가 부상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꾸준히 나온다. 경제력의 지표, 인구 수, 무역규모 등이 그러한 지표의 증거로 나오고 이제는 유럽 외에 제1의 패권국가인 미국과 갈등을 반목하고 있다. 과연 아시아가 또 다른 분기점으로 가고 있는가.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제2의 빅뱅의 순간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그 폭을 줄여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일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지도 모르지만, 과거를 현재와 비교해가며 다시 한 번 독해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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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발흥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위가 왜 발생했는지서양 경제사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살펴본 개설서중세에는 분명히 아시아보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뒤졌던 유럽이어떻게 19세기부터 아시아를 따라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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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1. 본인

    2. Zheng He의 선단 (https://yoosi0211.tistory.com/entry/%EB%AA%85%EB%82%98%EB%9D%BC-%EC%A0%95%ED%9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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