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삶을 체화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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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동포

    정진성 지음

     

     

     

    "역사의 무게를 온 몸으로 받으며 버티는 삶"

     

    다큐멘터리 <카운터스>에서 소리치며 저항하는 대장, 다카하시

     

    진짜 바퀴벌레는 누구인가

    작년, 2017년에 개봉한 이일하 감독의 다큐멘터리 <카운터스>를 본 적이 있다.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속칭 ‘재특회’라 불리는 극우 집단의 혐한 시위에 맞서는 일본인들을 다룬다. 그들은 전직 야쿠자 출신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카운터스’라는 집단으로, 무식할 정도의 육탄전으로 강렬하게 저항하며 재특회와 공권력에 저항하며 싸운다. 일장기를 흔들며 “조선인을 죽이자”라고 외치는 재특회 앞에서 “진짜 바퀴벌레는 너희다”라며 돌진하는 그들의 싸움은 스크린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가득 채운다. 그러나 그건 잠시일 뿐, 화면 사이에서 삐져나오는 재일 한국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중적 시선과 태도, 그리고 그것을 감내하면서도 체념하지 않고 조용히 저항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재일 한국인이라는 신분이 그저 출신이 아닌, 얼마나 복잡한 관계와 갈등을 내포하는 것인지 서서히 알게 된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단순히 해방 이후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 내에 잔류한 한국인이라고 정의하기엔 그들이 반세기 이상 겪은 경험과 내재한 정체성을 설명하는데 너무나 부족하다. 이제 조금씩 연구가 누적되고 있지만 여전히 식민지 시대가 만들어낸 잔류물 정도로 이해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울대학교 정진성 교수가 쓴 <재일동포>는 재일 한국인들의 정착과정과 그들이 경험한 차별과 그 속에서 확립하는 정체성, 그리고 그 특수성에 대해 총체적으로 연구한 몇 안되는 귀중한 연구서이다. 산발적이고 파편화 된 숫자들을 정성껏 모아 정량적인 분석을 한 것 뿐 아니라, 수 년동안 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분류하고 체계화하여 그들이 겪은 삶을 다각도로 이해하게 해준다.

     

    무엇보다 온갖 혐오와 차별을 감내한다는 것, 그것조차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것, 그리고 그 경계선에 선 채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조금은 느끼게 된다. 독자들은 그 과정에서 그들이 짊어졌을 역사적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며 글을 읽을 수 있다. 담담하고 담백한 연구 결과 속에서도 이러한 감정이 전해지는 것은 무척 고마운 일이다. 

     

     

    한국과 북한과 일본의 사이에서 

    재일 한국인들을 이해하는 열쇠는 바로 ‘사이’에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사이와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실존적 정체성을 갖고자 희망한다는 것 또한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편리성 때문에 한국의 국적을 취득하면서도 정치적,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도와주었던 북한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고, 그와 동시에 일본 사회에서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과 그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는 재일 한국인들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과정이다. 

     

     

    특별영주 재일동포라는 존재는 일제 강점기 조선인 이주의 역사와 그들의 생활, 해방 후 국적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이들에게 주어진 일본 정부의 처우, 일본 사회의 편견과 차별 등등 여러 조건의 표면적인 결과이다. (p.141)

     

    재일동포의 존재에서 국적은 어떤 결적적이거나 당연한 조건이라기 보다는 상황적인 변수인 경우가 적지 않다. 한 가족에 몇개의 국적들이 공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p.157)

     

    권리로서의 일본 국적 취득 개념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민족을 지키고자 하는 정신이 일본 곳곳에서 느껴진다. (p.182)

     

     

    저자가 그간의 연구자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일 한국인들이 대체로 일본에 동화되고 있다는 안이한 전제를 하고 있다는 것을 비판한 것처럼, 세대가 지나면서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유연해진 것일 뿐 단순히 일본화된다고 단정짓는 것은 곤란하다. 그들은 우리가 보기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특히 남한이나 북한의 선택이 아닌 한반도의 정체성을 획득하기를 소망한다. 이는 민족학교의 교육과 민단 또는 총련에서의 교육의 결과로 분석되지만 그에 더해 타지에서 경험하는 소수자로서의 감수성이 덧붙여진 결과이지 않을까 짐작이 된다. 해외에서 비로소 온전히 한국인일 수 있었다는 한 인터뷰이의 말처럼, 외부자로서는 남한이든, 북한이든 그것은 큰 의미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재일 한국인의 그러한 태도에서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지녀야할 정체성의 지향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다른 경계에 사람들, 뉴커머

    저자는 올드커머로 불리는 일제강점기, 또는 해방 이후에 정착했던 재일 한국인 외에, 90년대를 기점으로 일본으로 유입되었던 한국인들, 뉴커머들까지 연구의 대상으로 확대한다. 이들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본 적이 없었던터라 그들이 또다른 형태의 재일 한국인으로 삶을 형성해 가는 것에서 또다른 경계의 지점을 보여 준다. 대부분 한국에서 여러 가지 사정과 이유들로 넘어가 불법으로 정착하게 된 경우로, 기존에 있던 올드커머들과 크고 작은 마찰을 형성하며 공간을 점유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뉴커머들이 정착한 도쿄의 대표적인 코리안타운, 신오쿠보

     

    대다수 내부 소수민족의 경우처럼 그들의 관계는 주로 경제적인 것이지만 그 그룹들이 각기 그들의 경제를 형성하는 데 비해, 1980년대 뉴커머는 거의 전적으로 올드커머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형태를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협력과 갈등도 불균형적인 것이었다. (p.283)

     

     

    그들의 정체성은 전혀 다르지만, 차별과 폭력, 억압을 경험하는 측면에서 유사한 접점이 있다. 그 감각을 묵묵히 체화하며 일본이라는 공간 속에서 비집고 들어가 그들만의 지형을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올드커머와는 너무 다른 출발점으로 인해 저자는 올드커머가 특수한 집단으로 고립될 것인지 반문한다. 뉴커머들은 결국 한국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한국에 거주하는 우리 또한 적극적인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느낀다. 특히 지금과 같은 한일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어쩌면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날선 국가 간의 경계를 완화해주는 유화제가 될 수 있을 것이란 한 낮의 꿈 같은 상상도 해 본다. 

     

     

    역사의 무게를 버티는 사람들

    재일 한국인들은 한국이 경험한 식민지의 아픔을 여전히 보여주는 증인들이다. 저자는 대만과의 비교를 통해 왜 한국인들만 유독 일본에 60만명 가까이 잔류하게 되었는지 설득력있게 보여 준다. 그 만행의 처참함을 결코 수치로 동등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대만과는 달리 상당수의 한국인이 일본에 남게 된 후 경험했고, 앞으로도 감내하고 버티어 나아갈 삶의 모습은 역사의 일부로서 여전히 진행중이다. ‘우리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이 여기 이렇게 살아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 아직도 그 역사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으며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저자의 표현 속에서, 저자의 소수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 책임감을 느낄 수 있다.

     

    재일 한국인은 이미 3,4세대까지 살아갈 정도로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그 정체성이 희미해지기 보다는 오히려 선명해지고 다양해지는 것을 보며 경계에 선 삶을 진지하게 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 준다. 재일 한국인들이 짊어진 무게를 함께 나눌 용기가 필요함을 느낀다. 그들이 가지는 깊은 고뇌와 무한한 용기를 마음속 깊이 응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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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동포

    재일동포에 대한 총체적 접근이 책은 일본으로의 이주가 시작되었던 일제강점기부터 2010년대에 이르는 시기까지를 포괄하여 재일동포의 형성과 변화 과정, 이들의 법적 지위와 국적 및 정체성, 생활상, 재일동포 사회 내부의 변화와 민족교육 등의 주제를 아우르는 총체적 연구이다. 타 재외동포와는 다른 역사적 특수성을 지니며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

    www.yes24.com

     

    사진 출처

    1. 카운터스의 대장, 다카하시 (https://www.yna.co.kr/view/AKR20160228059100033)

    2. 도쿄의 한인 타운, 신오쿠보 (https://tokyomina.com/1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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