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으로 가는 과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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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노숙인 - 그 삶을 이해한다는 것 

    구인회, 정근식, 신명호 편저

     

     

     

    노숙으로 가는 과정들

     

     

    어느 오전, 서울역에서 만난 여성

     

    무엇이 노숙으로 이끄는가

    얼마 전, 본가에 내려가기 위해 서울역을 갔다가 광장에서 한 여성을 보았다. 대략 오전 9시 정도 되었을까, 오른쪽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바치고 무언가를 요청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시간에 쫓겨 다시 떠나갈 때까지 그녀는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불편한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왜인지 돈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에(구걸의 필수 물건인 돈바구니를 구할 시간도 없었던 것일까)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난 누군가에게 그 마음의 짐을 떠넘기듯 서울역 안으로 발걸음을 서둘러 재촉해 버리고 말았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비집고 드러났던 그 광경이 무척 생경했기에 내려가는 KTX 안 내내 여러 생각에 잠겼다. 돈을 원한다고 생각했지만 신고 있던 슬리퍼, 복장, 그리고 비교적 깨끗해 보였던 외모 탓일까, 단순히 구걸을 한다고 쉽게 느껴지진 않았다. 무엇보다 앉아 있던 그 위치는 너무 길목의 중앙이라 쉽게 구걸을 하는 포인트가 아니었다. 어떤 문제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서울역에 도달했고, 거기에 그만 주저 앉아버린 느낌이었다. 무슨 이유였을까. 어쩌다가 그렇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밖에 없었을까. 잠시 지레짐작을 하다 어쩌면 서울역이라는 장소, 그리고 그녀의 외양과 행동에 무심코 선입견을 가진 것만 같아 자책하며 생각을 마무리 할 수밖엔 없었다. 

     

    그렇게 까마득 잊고 있다가 이 책을 읽으며 불현듯 다시 그녀가 기억 속에서 소환되었다. 어쩌면 그녀는 노숙으로 가는 기로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구인회 교수를 비롯하여 함께 한 여러 저자들은 책에서 한국 사회에서 노숙이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고, 그 행위(또는 지위)로 도달하는 과정에 대해서 주요한 문제인식을 던진다. 노숙인은 주요 사회복지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발생 경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밝혀진 것이 적었던 터라 연구자들은 ‘왜 노숙을 하게 되는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총 52명의 노숙인들은 그들의 현재의 생활 뿐 아니라 면접 순간까지 살아온 전체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남겼다. 그렇게 기록된 52개의 생애사를 통해 연구자들은 각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 하였고, 그 결과물을 엮은 것이 책의 내용이다. 노숙의 발생원인과 진입하는 과정에서부터 여성 노숙인이나 노숙인들이 향유하는 특정 문화나 가치관, 정체성 등 다양한 세부 요소들을 함께 다룬다. 

     

    구술생애사라는 것이 무척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야 하는 작업인 만큼 나와 같은 학생이나 관련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여 촘촘히 기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에 대한 일반화된 답을 내기에는 한정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읽으면서, 종로를 걷다 흔히 마주했던 노숙인들은 어떤 삶을 거쳐 왔을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서울역에서 마주한 그녀도. 감히 그들에 대해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노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조건들에 대해 알게 된다. 개인적인 조건에 사회적인 조건들이 덧칠되면서 조금씩 그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노숙과 주거상실의 관계

    책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나도 노숙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노숙은 결국 개인적인 문제가 큰 것이 아닌가 하고. 비교적 젊은 남성이 한 낮에 벤치에 누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한번쯤은 그런 생각을 하게 마련이라 생각했다. 물론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개인적 요인을 강조(p.7)하는 입장도 있지만, 노숙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 인과론에 따른 사회구조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도 함께 있음을 인식하는 게 중요했다. 노숙은 빈곤을 전제하지만, 모든 빈곤이 노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p.8) 결국 경제적 빈곤이 어떻게 특정 행위, 즉 노숙으로 이어지는지 노숙 위험요인과 촉발요인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서울의 고가도로 밑에도 노숙자는 있다. 모든 빈곤이 노숙으로 이어지진 않지만 어디에나 노숙자는 존재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주거상실이다. 그동안의 연구들은 개인의 문제나 소득상실의 측면에서 연구가 많이 다루어진 반면, 주거문제는 소홀히 한 경향이 있는데, 이 책에서 보다 집중적으로 다루게 된 것이다. 저자들은 주거를 주거획득과 주거유지의 두 측면에서 바라보면서, 주거획득을 했더라도 유지를 지속하지 못해 한순간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을 포착한다. 특히 그것은 순간의 문제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내재한다는 점에서 복합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노숙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주거상의 일회성 위기라기보다, 비교적 오랜 기간을 두고 잠복해 있던 위기요인들이 어떤 사건들을 통해서 현재화되고, 현재화된 위기에 대해서 개인이 어떤 반응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p.60)

     

    이혼하고 혼자 있으면서 장사를 몇 번 했어요…그거 하면서도 우울증이 있어 가지고 계속 병원을 다닌 거에요…자꾸 누군가가 나를 죽인다고 생각을 하게 되고, 나를 누군가가 쫓아 온다고. 그런 생각이 들어서, 피해 다녔는데, 집에 있는 가구들을 다 깨 버리고 도망을 나온 거예요. 그 때부터 돌아다닌 거예요. (p.78-79)

     

    이처럼 정신적인 질환과 같은 개인 문제에서부터 이혼과 같은 가족 문제, 직장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함께 작동되며 노숙으로 이끈다. 그렇게 한번 주거를 상실하면 정상적인 주거를 획득하는 것이 쉽지 않다. 쉼터라도 들어갈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거리나 찜질방, PC방, 쪽방, 고시원 등을 전전하게 된다. (p.129) 대부분 임시적인 거처라는 점에서 노숙을 그만하고 싶어도 일단 안정적으로 머물 ‘개인 공간’이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노숙을 반복하는 양상이 빈번히 나타난다. 게다가 설령 다시 주거공간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매우 단기적이거나 불안정한 고용 안정성으로 소득이 적어 유지 능력도 무척 떨어질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화도 내본 놈이 잘 낸다고, ‘안정적’ 주거 경험이나 노동 경험이 풍부할수록 재활에의 의지나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을 선택할 때 보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방향으로 선택한다는 점이다. (p.142) 노숙으로 가는 경로를 줄이고, 노숙에서 쉽게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삶의 기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의 수준과 질을 높이는게 중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서구의 경우처럼, 아무리 복지 수준이 높아도 노숙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면, 그들에게 노숙하기 전의 경험을 잘 획득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장기적으로 중요한 방향임을 느낀다. 

     

     

     

    노숙의 삶에 고착되는 과정

    문제는 노숙의 생활에 둘러싸고 있는 어떤 ‘무기력한’ 기운이다. 삶의 선택지 속에서 이미 바닥에 도달했다는 생각에, 또는 하던 습관 때문에 노숙 생활에 계속 머물고 고착화 되는 것이다. 도박으로 인해 이혼을 하고, 노숙을 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지 못해 지속한다던지, 자포자기의 심경으로 위험한 상황에 스스로 내놓는다던지, 정상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나타난다는 것을 구술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서울역 앞에서도 보면 차선이 몇 차선이에요. 거기도 그냥 돌아다녔어요. 차들이 나를 비켜 다니니깐 재밌더라고요. 그때 내가 웃으면서 그랬어요. 그래 나 칠 자신 있으면 니네들이 치어 봐라. 그러면 차들이 다 나를 피해 다니는 거야. 그러면 그게 그렇게 재밌는 거야. 별 희한한 재미도 있어요. (p.91)

     

    나도 연구지원을 받아 서울의 고가하부공간의 생활을 조사할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 노숙인은 아니었지만, 상당수의 남성 노인들은 고스톱과 같은 도박을 하는 것이 빈번하게 목격되었다. 그들은 게임이라고 얘기하지만, 실제 내기가 함께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일종의 하위문화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생활공간이 고착화 되는 것도 발견하였다. 사람들의 이동이 드문 공간을 일시적으로 점유하여 자신의 생활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 보면, 어느 순간 사회와 도시의 깊은 어둠 속으로 계속, 지속적으로 침잠하여 생활하는 것이 지속된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익숙해지면 종국에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어디서 노숙을 하든, 그것 자체가 문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매일 같이 특정 장소에 모이는 사람들이 있고, 또 생활한다는 점에서 그들만의 문화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다 깊이, 지속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성이 있다. 그들은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고가하부의 배수구 위에 자리를 잡은 노숙 공간

     

    정상적인 삶도, 노숙의 삶도 똑같이 24시간이 주어진다. 그들도 주어진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아는 것이 노숙을 이해하고 또 지원할 수 있는 지점이 될 수 있다. 책의 말미에서 밝힌 것처럼 대상화와 주체화 사이에서 정책적 딜레마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단순히 구제의 대상이 아닌 이해와 포용의 대상으로 인식의 폭을 넓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책을 덮으면서도 입 안에 계속 맴돈다.  

     

     

     

    정상이라는 허구 속에서

    여러 연구자들의 말 속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정상성이라는 것의 위험이다.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노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규정할 수는 없다. 노숙인들 각자가 갖는 정상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다른 것처럼 정상적인 것에 대해 논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함부로 뱉을 수는 없지만 판단의 기준은 세워야 하니 더욱 그렇다. 

     

    한편, 책의 장점이자 단점은 여러 연구자들이 각자의 연구 문제에 따라 글을 작성하였기에, 흐름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있지만, 동시에 각 장이 완결적이어서 어디서 읽든 다양한 세부 관점을 한번에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있었다. 또 아쉽게도 분량 상 이 책에는 채록된 구술의 극히 일부분만 인용, 수록되어 있어 연구의 내용에 따라 읽을 수밖에 없는 게 조금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애사, 구술사 들은 것은 언제나 무언가 울림이 있다. 나와 전혀 다른 삶 속이지만, 각자의 인생은 그 나름의 인과관계와 이유가 있고,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그들의 삶에 대한 공감, 나에 대한 반성, 사회에 대한 분노 등 다양한 이성적, 감성적 사고들이 뒤엉킨다. 그러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생애사가 갖는 가장 큰 목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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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노숙인

    이 책은 한국사회의 압축적 발전이 가져온 어두운 그림자라고 할 수 있는 노숙인 문제를 다양한 학문 분야의 시선으로 조명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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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모두 본인 사진 (얼굴이 나오진 않았으나, 특정인을 판별할 수 있는 사진일 경우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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