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린 매시 - <공간, 장소, 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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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 장소, 젠더

    도린 매시 지음, 정현주 옮김

     

     

    “공간, 장소에 대한 관계적 이해"

     

    우리의 공간들은 과연 관계적인가

     

    공간에 내재된 다양한 관계들

    공간은 기본적으로 불평등하다. 토지는 한정적이고 그 생산성과 위치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차등적인 공간구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 관계로 공간이 재편되는 경우가 많고, 생산수단을 지닌 기업이나 자본가, 혹은 전문가들이 특정 공간을 점유하면서 그 속에 내재된 경제적 우위가 공간적인 우위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다양하고 다층적인 맥락의 권력관계가 양산되고 공간의 지배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영국의 저명한 지리학자 도린 매시는 책을 통해 그 공간과 장소에 내재한 차이에 대한 번뜩이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가 가진 사고의 핵심 단어는 ‘관계’인데, 사회적 상호 관계나 경제와 계급에 관한 관계, 그리고 젠더화된 관계까지 공간을 배경으로 관계에 대한 다각도의 사고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공간, 장소, 그리고 젠더로 나뉘는 세 축을 중심으로 저자가 저술한 논문이나 생각들이 유기적으로 엮여 있어, 관심이 있는 부분부터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 

     

    이미 쓰인지 2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녀의 생각은 이 사회를 설명하는데 퍼즐처럼 꼭 들어맞는다. 특히 공간이 불평등, 불균등해지는 과정은 신자유주의가 더욱 확산되고 있는 21세기를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그는 우리는 어느 장소를 착취하는 곳에 사는 동시에, 또 착취당하는 순환 속에 놓여 있음을 지적한다. 아무리 그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우리 손에는 최신 아이폰이 쥐어져 있고, 눈앞에는 BMW가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이미 일정 부분은 세계화 속에서 ‘엘리트의 관점’을 탑재한 채 세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장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렇게 공간 내의 존재하는 불평등한 권력 관계는 장소를 형성하는 기제로도 작동한다. 그에 따르면 장소는 내부에서 시작되는 고유한 속성의 것이 아니라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구성된다. 물론 그 관계가 항상 불평등한 것은 아니지만, 요지는 관계를 통해 장소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장소(성)은 이미 무언가가 깃들여져 있다는 기존의 통념과 대치되는 사고이며 장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새롭게 들여다 볼 계기를 제공힌다. 그러면서 그는 빠른 속도감으로 ‘시공간 압축’이 일어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장소에 대한 불확실성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일반적인 인식에 과감한 의문을 던진다. 

     

    장소의 구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오랜 내부 역사가 아니라 그 장소가 사회적 관계의 특정한 군집으로부터 구성되었다는 사실, 그러한 관계들을 함께 모아서 엮은 특정한 접합점이라는 사실이다. (p.278)

     

    즉, 장소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자 단순히 로컬리티를 강조하거나 그에 속한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장소인식이라는 것이다. 경계 지어진 장소라는 것은 허상이며 다양한 사회관계들이 공간을 가로지르며 확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근처 동네만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홍대가 젊은이들의 유흥과 소비 동네로 인식되지만 반드시 단일한 장소성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을 하는 사람도, 출판을 하는 사람도 존재하며 밤과 낮의 공간도 다르기 마련이다. 이처럼 모든 장소에는 복수의 장소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는 집도 마찬가지이다. 

     

    집이라고 불리는 장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커다란 요소는 그러한 장소가 어떤 식으로든 늘 개방적이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어떤 의미에서든 대부분의 장소는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해 왔다. 이는 장소 정체성 구성에 과거가 관련 없다는 뜻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생산된 본질적인 과거란 없다는 뜻이다. (p.309)

     

    중요한 것은 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조건, 즉 만남의 가능성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차별적이고 배제된 만남이 아닌, 최대한 개방적이고 다양한 만남이 가능한 공간은 자연스럽게 장소성을 획득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닫힌 공간은 닫힌 사회적 관계 밖에 포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젠더화된 공간들

    그는 이러한 장소의 다양성 속에서 어떤 균열을 포착해낸다. 바로 젠더의 차이가 공간으로 드러나는 틈을 발견한 것이다. 광부들의 공간과 주방의 공간이 서로 다른 성의 역할을 전제한 것처럼, 공간과 장소는 결코 균질하지 않으며 일정 수준으로 젠더화 되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미투 운동의 발원지도 남성의 권력이 지배한 어느 밀실이었고 거리와 같이 공적 공간도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경우가 많다. 이처럼 그녀가 관찰한 것은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공간 자체만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 있는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를 포착한 것에 있었다. 

     

    하이테크 화이트칼라 전문직 업무는 재생산 노동을 하지 않는 노동자, 다른 사람을 돌보지 않는 그런 노동자들만 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디자인되었다는 것이고,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을 돌보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p.336)

     

    이것은 생산-재생산의 문제로도 읽을 수 있는데, 노동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돌봄이 필요하고 이러한 노동의 격차에서 공간의 차이는 형성된다. 코로나 시대 이후 격리된 주거 공간에서 가장 고통 받은 사람들 중 하나는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이었다. 그만큼 노동의 재생산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활동이 일어나는 공간은 부차적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분명한 공간의 숨은 불평등이다. 

     

     

    복수의 관계성을 향해

    두툼한 그의 책에서 공통적으로 주장되는 것은 ‘열려 있는 관계성’이다. 그에게 공간과 장소라는 것은 개인이나 국가, 지역, 인종과 성별이 상호 간에 관계를 맺는 과정과 방식을 탐색하는 대상이고 그 속에서 차별과 권력의 불평등, 이데올로기 문제를 층위를 발굴해내는 과정이었다. 그가 발굴해 낸 지층들은 현실 속에 녹아든 중층들을 발견하는 연습문제가 되어 주었다. 그 문제를 아직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중요한 것은 그 차이에 맞서기 위해 움츠려들기 보다는 오히려 불완전한 반기도 의미 있음을 인지하고 외부로 발산하는 태도일 것이다. 애초에 공간은 ‘평평한 평면’이 아니기에, 우리는 그 차이 속에서 서로 간의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장소성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닫힌 공동체가 많은 사회는 장소성의 기회를 상실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도시는 얼마나 그러한가. 그가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일러주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지만, 결국 그것은 우리 몫으로 남을테다.  현재 발딛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함을 조용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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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 장소, 젠더

    공간과 장소를 비판적으로 재사유하고 이를 젠더의 문제 및 권력의 문제와 연동하다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의 ‘문명텍스트총서’는 인문학 안팎의 다양한 전공을 가진 연구자들이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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