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피크닉, 그리고 제로 컴플렉스 (Zero Com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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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층고와 푸른 나무가 보였던 창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각자의 생일에 꼭 프렌치 레스토랑에 가기로 정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프렌치'라는 단어가 주는 주눅감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평소에 경험하기 힘드니 이럴 때라도 가자라는 마음 때문인지도. 1월에 있었던 내 생일에는 해방촌의 꼼모와(Comme Moa)를 갔었고, 이번 아내의 생일에는 항상 눈여겨보던 제로 컴플렉스를 가기로 했다.

     

    사실 대학 때 프랑스어를 교양과목으로 수강한 적이 있었는데, 학점을 B0로 받아 속상한 마음에, 재수강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도 마찬가지로 B0를 받아본 후, 프랑스어는 나와 인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싸바비앵, 메르시 보꾸 밖에 기억이 안나는 것 보면 그런 것이 확실하다.

    그 트라우마 때문일까. 프렌치는 나에게는 항상 먹을때도, 먹고 나서도 잘 머릿속에 남지 않은 음식이 되었는데 이곳은 조금 달랐다. 

     

     

    들어가기 전에 피크닉 숍에서 이것저것 잠시 구경.

     

    이충후 쉐프가 이끄는 제로 컴플렉스. 미슐랭 원스타의 레스토랑이다.

     

     

    피크닉(Piknic) 2층에 위치한 제로 컴플렉스. 피크닉 전시는 대중의 취향을 잘 갈무리해서 보여주는 느낌이다.

    용일이형 전시도, 제스퍼 모리슨도 그랬고, 지금의 차에 관한 전시도 그런 것 같다. 뭐랄까, 좋긴 한데 인스타그램 피드들을 실물로 보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신선한 충격같은 건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냥 방문하고 편안하게 구경하다 오는 것만으로도 좋다. 동네와 공간이 그렇다. 

     

    네이버 예약으로 점심 2시 쯤으로 예약을 해 두었는데, 아침에 한번 더 확인 전화가 왔었다.

    조금 일찍 갔더니,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 점심식사가 3시반까지여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식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귀뜸해 주었다. 

     

     

    군더더기 없는 가구와 바닥

     

    식사 전 발포주 한잔.

     

    코스 하나이기에, 메뉴를 고르고 할 것도 없어서 좋았다. 술만 스파클링 와인으로 한잔 골랐다. 

     

    너무 좋았던 것 중에 하나가, 복잡한 이름이 아니라 재료로 메뉴를 구성했다는 것이었다. (사진으로 남기진 못했지만.)

    어차피 메뉴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데, 오히려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읽고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기억에도 훨씬 잘 남고. 돌아와서도 우리는 재료로 그 식사를 추억하게 되었다. "그 때 그 도미랑 허브 잔뜩 들어간 후식 맛있었어." 식으로 말이다.

    이런 방식은 소비하는 사람도, 제공하는 사람도 각자가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방식인 것 같아 무척 인상적이었다. 프렌치 요리에 부재했던 대중과의 소통을 이런식으로 풀어내는는구나 싶었다. 

     

     

    얇은 파이지에 육회가 들어가고 치즈로 마무리. 이거 정말 맛있었다. 

     

     

    각각의 요리들. 하나하나 설명하기엔 좀 어렵지만, 대체로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면서도 조화가 상당히 즐거웠다. 특히 시각적으로 완결된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얼마나 자주 메뉴가 개편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메뉴의 다채로운 색깔도 너무 좋았다. 전통적 방식으로 만들어진 요리의 맛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아닌, 쉐프가 어떻게 이것을 보여주려고 했고, 재료를 어떤 식으로 느끼게 하려고 했는지 요리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관심을 갖도록 하는 과정이 재미 있었다. 피크닉 전시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요리에서 찾게 되다니.  

     

     

     

     

    더욱 좋았던 것은 직원분들의 친절함과 말솜씨. 조용히, 나긋하게 각 메뉴에 대해 설명해 주면서도,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에 귀찮아하지 않고 친절히 답변해 주었다. 그저 매뉴얼대로가 아니라, 그 사람의 개인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주셔서 너무 좋았다. 농담도 받아주고, 식전빵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나이프 브랜드가 어딘지 가감없이 알려주었다. 마치 도슨트처럼, 식사의 과정에 한층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먹어 해치우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하나를 경험하는 과정으로서의 식사. 그동안의 프렌치와는 또 달라 신선했다. 

     

     

     

    술을 준비해주는 과정

     

    바깥의 풍경

     

     

    군더더기 없는 내부 인테리어와 풍경들. 가구와 바닥 사이, 또는 요리와 가구 사이에 아무런 매개 장치들이 없이, 즉각적으로 결합되는 방식이 너무 좋았다. 요리와 제로 컴플렉스라는 레스토랑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아떨어진달까. 미니멀한 구성이지만 담백해서 오히려 편안했다. 한마디로 위압감이 없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모두 단단한 재료들이라 소리가 울리는 것. 주위 수다 떠는 사람들의 소리에 설명해주시는 직원분의 목소리가 묻힐 정도였다.

     

     

     

    빵은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마더스 오븐'에서 받아온다고. 너무 맛있어서 엄지척을 날렸더니, 추가로 더 내어주셨다. 그리고 돌아와서 우리도 주문했다. 

     

     

     

    허브가 듬뿍 담긴 아이스크림

     

     

     

    입안 가득히 담기는 풀 향기가 무척 매력적이었던 코스였다. 항상 이렇게 허브를 많이 사용하는지도 궁금했다. 

    한가지 팁이라면 식사시간이 최소 1시간은 기본이어서, 점심 식사의 경우 꼭 2시 전에 들어가길 추천한다. 

     

     

    우리에게는 가격이 결코 저렴한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날에 또 한번 와도 좋을 곳으로 남았다. 

    고마운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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