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센틱(Authentic)한 삶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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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 을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동안’ 을 디자인하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살아있고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언제나 축복받고 행복한 것이지만 그 살아있음 자체로는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닌 사회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점점 더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삶의 환경과 조건 속에서, ‘어떻게’ 라는 물음은 점점 더 그 힘의 세기를 더해가고 있고 한가지의 해답보다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내포하는 상상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인 것 같다. 

     

    우리의 삶의 모습과 영역들을 자세히 살펴 보면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비교적 느슨하게 바뀌는 영역과 지점들이 있다. 이를테면 건축이 그렇다. 첨단의 기술들이 건축을 새로운 영역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만큼 어마어마하지는 않다. 르꼬르뷔지에가 도미노 시스템으로 현대건축을 이끌었지만 여전히 이시대에는 흙집도, 나무집도 존재하고 또 ‘사용’ 되고 있다.  

     

    마크 주커버그의 페이스북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사람들의 관계와 정보의 흐름, 심지어 개인의 의식까지 바꾸어 놓고 엘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자동차의 동력원 뿐 아니라 산업구조 자체를 재편해나가며 단숨에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부각되기 시작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10년, 혹은 더 오래 전에 지어진 평범한 집에서 생활하며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식탁에 앉아 요리를 하고 밥을 먹는다. 

     

    얼핏 보면 동시적이지 않아야 할 것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선형적으로 진보하고 바뀌어야 할 것 같은 삶의 패러다임들이 결코 선형적이지 않음을 우리가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그 방향성이 뚜렷할 수 있겠지만 지금, 여기의 우리 일상은 그저 조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진행되는 삶의 소용돌이일 뿐이다. 전세계의 휴대폰 보급률은 90퍼센트를 넘었지만 은행의 통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50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아프리카의 어느 한 노동자가 타국에서 모은 돈을 비트코인으로 바꾸어 휴대폰으로 아내에게 보내는 상황이 기묘하면서도 또 당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없어서는 안될 것처럼 여기고 있는 많은 것들이 삶을 보다 풍요롭고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들이 전부가 아니라 다양한 삶의 조건들 중에서 극히 일부분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이 증가하게 되는 삶의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애초에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지만 과거에 비해 많은 것들의 격차와 속도가 훨씬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나의 문제이면서 나의 소중한 여러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인류와 지구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도 과학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인류의 진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 중에 한명이지만 기술이 아무리 진보해도 튜브에 든 음식과 알약으로 된 디저트를 섭취하는 식사를 하지 않듯이, 삶에는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있으면서도 또 동시에 대체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삶의 많은 수단과 조건들의 상당수는 과거에서부터 천천히 쌓아온 것들이고 또 그것들의 상당수는 미래에도 여전히 대체될 수 없는 삶의 부분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에는 분명 중요한 가치들이 녹아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민족과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고 그것들 모두 저마다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을 평가할 자격이 없고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저 나는 나에게 있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런 관심 속에서 나는 여러가지의 가치 중 하나를 ‘어센틱(Authentic)’ 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조심스럽게 출발해보려고 한다. 무엇을 설명함에 있어서 우리말이 아닌 외국어를 직접적으로 끌어오는 것이 바람직하진 않지만, 아직 적합한 단어를 쉽게 떠올릴 수가 없어서 일단 영어의 단어를 가져오게 되었다.  

     

    authenticus이라는 라틴어에서 비롯된 authentic의 사전적 의미는 진짜의, 진본인, 정확한, 제대로 된 등으로 나타나고 classical, originality, genuine, true, real 등의 단어와 맥이 닿아 있다. 그렇지만 모든 단어들이 각각 미묘하게 다른 쓰임을 내포하고 있듯이 어센틱 또한 표면에 나타난 뜻 이상으로 여러 가지 의미들과 쓰임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다. 뚜렷하게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지만, 여러가지 용례와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 단어에는 어떤 것들의 ‘본질’이라는 느낌에 더해 과거와 현재의 시간 개념이 함께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역사적인 차원이라기보다 좀 더 일상적이고 개개인의 삶의 수준에서 발생하는 길이의 시간성이다. 

     

    어센틱이라는 단어가 일견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나 조금만 집중해서 살펴보면 의외로 우리 주위 곳곳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패션, 아트, 타이포그라피, 디자인, 컬러, 그리고 푸드에 이르기까지 어떤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홍보할 때 이 단어가 종종 쓰인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분야는 다양하지만 모두 공통적으로 흘러온 시간과 더불어 그 시간을 겪은 후에도 여전히 완성도와 유용함이 있다는 것을 내세울 때 사용된다. 이들은 길가다 종종 보이는 원조 할매국밥집과 같이 “사실 저희가 원조입니다.” 라고 최초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저희는 50년 동안 변함없는 손맛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와 같이 일정한 시간 동안의 유지되어 온 그  ‘무언가’를 자신들의 중요한 가치로 내세운다. 때로는 정신적인 차원에서도 쓰인다는 걸 나도 최근에 알았는데 무언가 현대의 환경 속에서 변하지 않는 자아의 만족과 실현을 추구하는, 대충 그런 뉘앙스로 쓰이는 것 같았다. 여하튼 간에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 단어의 쓰임을 삶의 가치로 끌어오는 것은 역으로 그것이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삶 속에서 함께 흘러왔다는 것. 그 자체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가능하려면 그 무언가는 애초에 훌륭해야만 한다. 그 전제조건 속에서, 어센틱한 삶이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의미인 ‘제대로 된’ 이라는 뜻에 ‘연속적인 시간’의 개념이 추가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제대로 된 것을 꾸준히 누리는 것’ 이다. 따라서 내가 상상하는 어센틱한 삶의 방식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속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센틱의 ‘제대로 되었다’는 것은 클래식이나 오리지널리티와는 미묘하게 다르다. 고전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멈춘 것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원류라고 부를만한 것을 지니고 있고 그래야 고전답다라고 평가를 받는다. 물론 현재에도 소비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고전’ 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것이지만 단순히 결과물로서의 고전의 가치는 그 자체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고전이 고전일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고 있고 그것으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반면 어센티시티는 그보다 더 자유롭다. 고전이냐 아니냐의 논쟁은 중요하지 않다. 고전이 갖는 중압감이나 존재감에서 옆으로 살짝 비켜나 있다. 첫째 아들이 아닌 둘째의 마음이라고 할까. 따라서 권위도 별로 없다. 하지만 보다 쉽고 편안한 느낌이다.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도 개개인은 그들만의 시간 속에서 그것을 오랫동안 즐기고 신뢰한다. 그래서 더 일상적이다. 어센틱의 ‘제대로 되었다’는 그 정도 수준의 제대로 됨이다.

     

    만약, 무언가(고전이든 고전이지 않든 간에)가 현재에도 지속성을 갖는다면, 나는 두 가지가 유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형식과 본질. 둘이 모두 유효할 수도 있고 둘 중 하나만 충족해도 현재에 여전히 그 쓰임을 가질 수 있다. 사회와 문화가 인정한 훌륭한 레퍼런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둘은 편을 가르듯이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연관성을 가진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현재에도 소비될 수 있게끔 만드는 그 안의 ‘무언가’이고 ‘제대로 되었다’라는 것은 그 무언가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단순히 ‘제대로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개개인의 꾸준함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것이 지속성을 가지게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요소들이 있는데, 그 중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애착(심)’ 이다. 무언가를 좋다고 느끼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 좋은 것을 공들여 유지하고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가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꾸준함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꾸준함의 시작이 어센틱한 삶의 방식의 시작이기도 하다. 물론 개인의 감정과 스타일은 모두 다르다. 따라서 나에게 ‘제대로 된’ 것이 모두에게 ‘제대로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클래식한 것은 누구에게나 클래식한 건 분명하지만 모두에게 어센틱하지는 않다. 그 미묘한 간극 사이에 애착심이 자리잡고 있다. 어떤 것이 어센틱한지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어센틱한 것은 반드시 애착심을 가진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안개 속에서만 허우적거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나의 초점은 앞으로의 미래에 있다. 무엇이 옳고 보다 나은 삶의 방식을 이루기 위한 가치인지 생각하고, 그것을 제안하며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것이다. 이는 삶을 살아가는 개개인이 지녀야 할 중요한 자세이자 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트렌드나 유행, 혹은 최신의 무언가는 아니지만 각자의 삶에서 필요하고 소중한 것을 지속적으로 소유하고 유지해 나가는 것. 그리고 그런 삶의 방식이 많아지고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것. 나는 그런 삶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함께 누리고 싶다.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살아있는 한 이런 삶의 태도는 언제나 유효할 것이라 생각한다. 

     

    무언가를 디자인하는 나 개인으로서 가지는 관심은 이런 삶의 방식을 가능하게 하는 ‘제대로 된’ 무언가이다.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는 동시에 꾸준함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 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정리하고 싶다. 나의 그릇이 작아 클래식한 것은 만들 수 없을지라도, 어센틱한 것은 만들 수 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센틱한 것들을 발견하고 생각하고 만들며 천천히, 또 꾸준히 나아가고 싶다. 

     

     

    나는 ‘것’ 을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동안’ 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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