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경계, 버스의 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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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경계를 보여주는 버스 종점 차고지

     

     

    공간의 경계를 감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땅에 그어진 하얀색 선을 넘거나 ‘서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표지판을 확인하는 정도로 단순하지는 않다. 경계는 두터울 때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끊임없이 변하기도 한다. ‘경계 너머의 땅’이라는 뜻의 월경지나 ‘닫힌 공간’이라는 뜻의 위요지가 대표적이다. 네델란드와 벨기에의 영토가 뒤섞여 있는 도시 바를러가 널리 알려진 사례이지만, 가깝게는 서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명한 함흥냉면 맛집이 있는 중구 오장동(법정동)이 대표적인데, 오장동의 일부가 쌍림동과 을지로 5가, 광희동 1가로 둘러싸여 섬처럼 형성되어 있다. 의주로1가에서도 비슷한 흔적이 남아 있는데 그 일부가 순화동과 의주로 2가에 막혀 고립되어 있다. 서울에 면한 김포의 경우에는 훨씬 더 적나라하다. <김포 한강신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양촌읍 구래리는 남과 북처럼 두 지역으로 나뉘고 말았다. 이처럼 어느 공간의 경계 밖에도 다시 같은 공간이 혼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경계선 자체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경계라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실감하게 한다. 결국 경계를 감각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직접 그 경계를 직접 경험해 보는 수밖에 없다. 경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이동의 과정 속에 넘나들며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대중교통은 변화하는 도시의 경계를 감지하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이다. 그중에서도 버스의 종점은 경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원의 반지름처럼, 도시의 중심에서 외곽을 향해 순환하는 시내버스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곳이 종점의 차고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버스 노선의 종점과 차고지는 서울의 팽창과 맞물려 그 확장되는 경계를 따라 지속적으로 옮겨졌다. 문제는 그 속도의 차이다. 옮겨가는 속도가 팽창 속도와 동일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울의 경계 밖 공간이 서울의 내부로 편입되어 이미 주거지로의 변화가 완료된 곳에서 버스의 차고지는 갈 곳을 찾지 못해 애처롭게 고립된 경우가 많았다.

     

    강남이 대표적이었다. 1979년 8월의 신문 기사에서는 아파트 단지 근처의 시내버스 종점 때문에 주민들의 불편을 기록하고 있었다. “서울 강남구 잠실 3동 주공아파트 4단지 후문 앞의 <영동교통> 종점의 경우 70대의 버스가 주차하는 곳인데도 주차장은 5백 평 밖에 안돼 부근 빈터와 아파트 인접도로에까지 마구 주차하고 있으며 밤새도록 버스를 정비하느라고 내는 소음과 엔진 시동 소리, 경적소리 등 각종 소음 때문에 주민들이 밤이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버스들이 주차하는 빈터는 포장이 안된 데다 단지 앞 도로에도 흙, 모래 등이 방치되어 있어 이곳에서 나는 먼지와 배기가스, 주차장의 기름 냄새 때문에 3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주민들은 창문을 열어놓지 못하고 있다.”라며 종점과 주거지가 혼재된 상황을 지적했다. 도봉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1985년의 기사에서는 “도봉구 월계 2동 광운대학 앞 <산신교통> 소속 시내버스 종점에서는 매일 자정 무렵부터 새벽 4시까지 차량 점검을 하면서 이웃 주민들이 밤잠을 설칠 만큼 시끄러운 엔진 소음을 내고 있다”, “이동네 주민 이씨는 ‘주민들이 모두 잠든 새벽 2시경부터 4시까지는 터놓고 소음을 내고 있어 잠을 설치기 일쑤라면서 버스 종점을 성북역 근처로 옮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라고 기록하며 조속히 버스 종점을 옮겨야 함을 주장했다. 모두 서울의 주변과 경계부에서 발생했던 일이었다.

     

     

     

    개포주공3,4단지 아파트도로가 버스차고로 (91.07.18_경향신문)

     

     

    한편 종점과 차고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운수회사가 큰 이익을 얻는 경우도 있었다. 일명 ‘종점 장사’라고 불리는 것으로 종점의 지가가 높아지면서 이를 매매하여 그 차익을 얻는 방법이었다. 1996년 기사에서 “서울승합 대표이자 서울버스운송 사업조합 이사장인 유쾌하 씨의 재산은 그의 부인과 아들 명의로 된 부동산까지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 밝은 사람들은 이들이 차고가 들어선 종점을 몇 차례 옮기면서 큰 부를 쌓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차고지를 팔아 다른 차고 부지를 구입하고 또다시 매각한 뒤 땅을 사고…이런 방식으로 자연스레 돈방석에 앉았다. 유 씨는 이런 유형의 축재 과정을 거친 대표적 인물. 이 회사 보유 차고지는 강동구 명일동과 고덕동에 있는 대로변 주택가 노른자위 땅이다.”라고 취재하였다. 이처럼 서울의 확장 시기는 그 주변부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가장 큰 이익을 본 때이기도 했다. 

     

     

     

    늘어선 은평구 갈현동의 버스들 (93.06.05_동아일보)

     

     

    서울의 경계가 완성된 지금은 어떨까. 현재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영차고지는 현재 총 31개로 대부분 서울의 외곽에 위치해 있다. 운수회사가 직접 보유하고 있는 사설 차고지까지 고려하면 그 수는 더욱 많을 것이다. 여러 운수회사가 함께 입주하여 사용하고 있어 그 규모가 상당한 곳도 많고 일부는 그린벨트를 해제한 지역에 위치한 경우도 있다. 그 어느 곳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그곳의 풍경을 통해 서울의 경계를 느낄 수 있다. 주거지와 거리를 둔 차고지의 모습, 엔진이 꺼진 버스 안의 고요함, 일렬로 늘어서 있는 수많은 버스들, 다양한 목적지들이 나열된 노선 상의 지명들. 서울 안에서는 볼 수 없는 이질적이면서도 거대한 풍경들을 통해 이곳이 서울의 바깥임을 실감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곳은 서울의 종착점이 아니라 서울로 들어가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장소. 그것이 바로 경계의 본질임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서울에는 눈으로 보이는 경계선은 없지만 이를 느낄 수 있는 공간과 장소가 있다. 그리고 그곳은 그 경계가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공간마다,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단칸방보다 작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종점을 가보아야 비로소 서울의 끝을 알 수 있게 된 것처럼, 경계도 직접 경험해보아야 비로소 인지된다. 버스를 타던 도보로 걷던 그 방법은 상관이 없다. 서울의 많은 곳을 경계를 찾는다는 시선으로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서울을 구성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이 글은 <매거진 파노라마> 7호에 수록되었습니다. 

    글 : 석준기

    사진1 김진솔

    사진2,3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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